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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너를 사랑하는 계절로맨스 소설 2026. 3. 11. 14:33
서울의 겨울은 늘 길게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은 거리의 사람들을 재촉했고, 사람들은 두꺼운 코트 속으로 몸을 숨긴 채 바쁜 하루를 지나갔다. 하지만 겨울의 끝자락이 되면 공기 어딘가에서 아주 미묘한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직은 차갑지만, 분명히 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지연은 그런 계절을 좋아했다. 완전히 새로운 시작은 아니지만, 무언가 다시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회사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다. 지연은 출판사에서 소설 편집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페이지의 글을 읽고, 작가와 연락하며, 마감을 맞추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매일이 설렜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는 일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일은 점점 익숙한 일상이 되었고, 설렘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연은 커피잔을 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지나갔다. 문득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에 대해 꿈을 이야기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는 늘 한 사람이 있었다.
민준.
그 이름을 떠올린 순간 지연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지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연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카페 입구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민준이었다.
그 역시 놀란 표정으로 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너 맞구나.”
그가 천천히 웃었다.
지연의 마음이 갑자기 흔들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재회였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일이었다.
“오랜만이네.”
지연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민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의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 앉아도 돼?”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몇 년 만에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었다.
카페 안에는 여전히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조용히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연에게는 그 모든 소리가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한때 가장 가까웠던 사람.
그리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멀어졌던 사람.
그렇게 두 사람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몇 분은 조금 어색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서로의 삶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민준은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몇 년 동안 다른 도시에서 근무하다가 최근에 서울로 돌아왔다고 했다.
“회사 근처라서 가끔 이 카페 오거든. 그런데 여기서 너를 볼 줄은 몰랐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지연도 작게 웃었다.
“나도.”
짧은 대화였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편안해졌다. 예전에도 민준은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조용해 보이지만,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지연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서울 언제 온 거야?”
“두 달 정도 됐어.”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네.”
“그러게.”
민준은 잠깐 창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지연을 보았다.
“너는 여전히 글이랑 가까이 있네.”
지연은 그 말에 조금 놀랐다.
“기억하고 있었어?”
“당연하지.”
민준의 대답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대학 시절 지연은 늘 글을 읽고 있었다. 소설을 좋아했고, 언젠가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때 민준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는 분명 글이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될 거야.”
그 말은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들렸지만, 결국 현실이 되었다.
지연은 잠시 웃었다.
“생각보다 힘들어.”
“그래도 잘 어울려.”
민준의 말은 여전히 따뜻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는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민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연아.”
“응?”
“그때… 갑자기 연락 끊어서 미안했어.”
지연의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
그 이야기는 언젠가 꼭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듣게 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였다.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들이 두 사람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민준이 다른 도시로 취직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나도 연락 안 했잖아.”
지연은 조용히 말했다.
사실은 연락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혹시라도 민준이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봐.
혹시 자신의 마음만 남아 있을까 봐.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민준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너무 어렸던 것 같아.”
지연은 그 말을 듣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많이 흘렀다. 그동안 각자의 삶을 살았고 수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아주 천천히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겨울 끝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봄처럼.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가끔 만나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만남은 아니었다.
퇴근 후 짧게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주말에 산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이상하게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몰랐던 것들도 많았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 모두 조금씩 변해 있었다.
지연은 예전보다 더 차분해졌고, 민준은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한강 근처를 걷고 있었다. 겨울이 거의 끝나가는 시기라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공기 속에는 어딘가 부드러운 기운이 있었다.
강 위로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우리 왜 그때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지연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다.
“어렸으니까.”
민준이 웃었다.
“지금은 안 어리다는 거야?”
지연도 웃었다.
“지금은… 조금 덜 무서워.”
그 말은 솔직한 마음이었다.
예전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시작했다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두려웠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겁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랑은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놓쳤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오래 돌아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는 것을.
민준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지연을 바라보았다.
“지연아.”
“응?”
“이번에는 놓치기 싫다.”
그 말은 조용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연의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몇 년 전이라면 이 순간이 너무 무서워서 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연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나도 그래.”
민준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겨울은 끝나가고 있었다.
멀리서 봄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도 다시, 사랑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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